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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토리

[제6편] KI(카롤린스카 연구소)를 빛낸 노벨상 수상자들

[제6편] KI(카롤린스카 연구소)를 빛낸 노벨상 수상자들 [이미지]
  • 작성2015-06-19
  • 조회9,498
  • 시설KI(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수상자
뱅트 사무엘손 수네 베리스트룀 울프 폰 오일러 랑나르 그라니트 악셀 휴고 테오렐
주요정보
  • About KI
    KI를 빛낸 노벨상 수상자들

    이번 테마에서 소개할 카롤린스카 연구소(KI: Karolinska Institutet)는 스웨덴 유일의 의학 분야 전문기관으로써 의학 연구 및 교육의 메카라고 볼 수 있다.

    핀란드 전쟁 후 군의관 양성을 위해 1810년에 설립되었는데 설립 당시에는 Medico-Chirurgiska Institutet라는 이름으로 설립 되었다가 후에 카롤13세의 이름을 따서 왕립 카롤린스카 의학 연구소로 바뀌었고, 이를 줄여 ‘카롤린스카 연구소’로 불리게 되었다.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의과대학이면서 스웨덴 내 30%의 의료인 배출을 담당하고 있는 최고의 의학 교육기관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 이외에도 기초 의학˙생물학 분야의 연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연구소는 스톡홀름의 솔나(Solna)에 병원과 메인캠퍼스가 위치하고 있으며, 스웨덴 동부지역 후딩에(Huddinge)지역에 남부 캠퍼스가 있다. 생물학, 기초의학, 약학 등 22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암과 혈액, 세포 분자 구조의 생물학, 순환 및 호흡, 발달 생물 및 재생, 내분비 및 신진대사, 전염 및 공중 의학, 과학 의료 서비스, 감염 및 염증, 신경과학까지 9개 분야의 생의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교수를 포함한 정규 직원 수는 4,283명이고 정규과정의 재학생 수는 6,014명이다.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광범위한 의학 관련 연구로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대표적으로 2012년 Times Higher Education World University Ranking에서 세계 32위, 유럽 내에서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 등에 이어 유럽에서 4위에 올랐으며, 북유럽 대학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특히 임상의학 및 약학 세계 11위, 생명과학 18위, 제약학 3위에 올랐다.

    카롤린스카연구소의 메인 캠퍼스에는 카롤린스카 연구소 과학공원(Karolinska Institute Science Park)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 캠퍼스가 위치한 후딩에 지역에는 스웨덴 최초의 생명의학 단지(Biomedical Park)인 Novum Research Park가 설립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기업들이 입주해 있어 카롤린스카 연구소와의 협력 연구 및 연구의 상업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또한 카롤린스카연구소는 산학 협력 강화와 연구 성과의 활발한 기업화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카를린스카(KI) 지주회사를 설립·운영 중이며 현재까지 40개의 벤처 기업을 탄생시켰다.

    2013년 카롤린스카 연구소 연구 자금은 정부 지원금 1,763백만 크로나를 포함하여 연구 위원회, 시 의회, 기관, 사업 등 외부 지원금액 2,805백만으로 총 4,805 크로나였다. 정부 지원이 4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연구 위원회에서 14%, 다른 정부 기관으로부터 7%, 스웨덴 단체 및 기관이 14% 등을 차지했다. 자본의 총 변화는 석사와 박사학위의 교육산업뿐만 아니라 연구, 박사교육과 관련하여 42.3백만 크로나의 적자가 발생하였다. 교육의 지원금은 아직 실행되지 않은 계획에 대한 정부 보조금 투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정부 직영 자금은 2010년 이후로 11% 증가하였고, 외부 자금은 8% 증가하는 등 총 연구 자금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증가 추세를 보이는 발렌베리 제단으로 부터의 투자자금은 2012년부터 15%가 증가하여 총 678백만 SEK가 증가하였다. 총 지출은 306백만 SEK로 2012년을 기준으로 6.7% 증가하였다. 직원 비용은 143.5백만이였고 연구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FTE직원도 91명이 증가하였으며, 임대료의 물가 지수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건물 사용과 사업확장에 대한 지출 비용이 4.3% 증가하였다.

    KI 예산

    KI의 조직구성은 크게 고등교육 및 대학, 대학원 이사회 등, 운영진, 연구부서, 대학 행정국으로 구분된다. 이사장의 결정에 따라, 각 부서에는 부서 차원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위원회가 있다. 이사회는 고등교육 및 대학, 대학원 이사회 등으로 구성되어 고등교육활동 및 고등교육 조례의 조정 및 기관과 관련된 주요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한다. 부서 이사회는 고문단이며, 각 부서간의 대화와 후원을 얻을 수 있는 폭넓은 토론회를 제공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직원, 학생, 연구원, 박사학위 학생, 기술 관리 직원과 같이 의회는 다른 분야의 대표들이 만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스톡홀름 인근에 27개의 연구부서가 위치하고 있으며 대학 행정국에는 행정본부, 예산부서, 정보 및 홍보, 연구 및 학사과정 담당부서, 인사, 시설 사무소, 학생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KI 조직구성

    KI의 국제 협력은 질병, 건강과 의학은 국경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할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 협력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상응하는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필수 과제이기도 하다. 협력은 3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개별 연구원들의 협동연구, 국제 고등교육 연구기관에 있어 비슷한 부서나 센터간의 협력, 국제 대학을 이끄는 전략적 연합을 이끄는 협력이 있다. 11개국(브라질, 캐나다, 중국, 핀란드, 인도, 우간다. 남아프리카, 미국, 일본, 싱가포르)과 협력을 맺어 박사과정 혹은 외래 연구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과는 70년대부터 협력을 맺어 왔으며 박사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협력활동이 점차 활성화 되고 있다. 일본과는 지난 20년 동안 협력을 유지하며 말라리아 분야에 포함된 감염과 면역에 대해 협동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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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story

    1810년 KI는 카를 13세에 의해 숙련된 군의병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카를13세의 이름을 빌려 연구소 이름을 “카롤린스카연구소(KI)”라고 지었으며, 1895년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생리ㆍ의학분야에 노벨상 수상자를 선발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 때부터 의학분야에 관해 전 세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KI의 임무가 되었다.

    KI_로고에 담긴 유래

    KI의 로고를 살펴보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중심으로 "뱀과 그릇(좌)", "어린 수탉(우)"이 배치되어 있다. 그 중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그리스 의학의 신 아이스쿨라피우스에서 유래하였다. 아이스쿨라피우스는 아폴로의 아들 이였으며 항상 뱀을 옆에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신이 만든 지팡이에 감고 다녔다고 한다. 뱀과 그릇은 원래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딸 건강의 여신 히에이아와 묘사되었다. 뱀이 그녀의 그릇에서 먹이를 먹고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어린 수탉은 새로운 삶을 상징하며 아스클레피오스의 병을 회복하기 위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이든 잔을 마신 후 마지막으로 “그리토.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을 빚졌소. 갚아야 하오. 잊지 마시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1940년 카롤린스카 병원과 공중 위생부가 문을 열었다. 1955년 휴고 테오렐(Hugo Theorell)이 호흡효소를 연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카롤린스카 역사상 첫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였다. 그뒤를 이어 랑나르 그라니트(Ragnar Arthur Granit)가 1967년 눈이 빛에 노출 될 때 체내 전기변화를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 수상을 하였으며, 1970년 울프 폰 오일러(Ulf Svante von Euler), 1982년 벵트 사무엘손(Bengt Samuelsson)과 수네 칼 베리스트륌(Sune Karl Bergstrom)이 차례로 노벨상을 받으므로써 카롤린스카연구소는 노벨 수상자와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이 본격화 되었다.

    2004년 카롤린스카연구소는 통합생리학 교수인 해리엇 발베르크 헨릭손(Harriet Wallberg-Henriksson)을 첫 번째 여성 총장으로 임명하였으며, 그 후로는 발병학과 심리학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되었다. 지난 2010년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2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였다. 현재는 세계의 의과대학의 선구주자라 불릴만큼 그 역사는 깊다.

    세대별 역사
    • 19세기 - 카를 13세부터 알프레드 노벨까지
      • 1810년 카를 13세에 의해 숙련된 군의병을 교육하기 위해 12월 13일 설립

        1811년 외과의사를 교육시킬 수 있는 권한과 일반적인 전문 의사도 양성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짐

        1816년 카를13세의 이름을 빌려 연구소 이름을 “카롤린스카연구소”라고 지음

        1861년 정식 대학으로 승격(교수 8명, 재학생 133명)

        1884년 5월 카롤리나 위더스톰(Karolina Widerstrom)이 의학분야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

        1895년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KI는 생리ㆍ의학분야에 노벨상 수상자를 선발하는 권한 부여받음

    • 20세기 - 노벨 수상자와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
      • 1940년 카롤린스카 병원과 공중 위생부 오픈

        1955년 KI 첫 번째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휴고 테오렐) 탄생

        1959년 스톡홀름 물리치료 연구소 흡수 통합

        1964년 치의과대학교 흡수 통합

        1967년 KI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랑나르 그라니트, 체내 전기변화를 연구) 탄생

        1970년 KI 세 번째 노벨상 수상자(울프 폰 오일러, 신경종말내 채액성 전달물질 연구) 탄생

        1972년 새로운 대학병원 후딩에 병원이 오픈

        1976년 스웨덴에서 첫 번째 독성학 프로그램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실시

        1982년 프로스타글란딘 관련 생물학적 활성물질 연구로 벵트 사무엘손과 수네 칼 베리스트륌 공동 수상

        1998년 스톡홀름 보건과학대 흡수 통합

    • 21세기 - 세계의 의과대학의 선구주자
      • 2004년 통합생리학 교수인 해리엇 발베르크 헨릭손을 첫 번째 여성 총장으로 임명

        2006년 발병학과 심리학 프로그램이 실시

        2010년 KI 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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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stitute & Center

    KI에서는 기초 실험 연구에서부터 환자중심 치료 및 간호 연구까지 전체적인 의학 분야를 포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KI는 전체 스웨덴 아카데미 의학 연구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속해있는 각 센터는 확고한 연구나 교육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각 센터는 다양한 협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보통은 부지와 장비를 공유하는 연구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스웨덴 정부의 활동인 전략적 연구 분야(SFO)에서 카롤린스카연구소는 일곱 개 분야 중 여섯 개 분야연구(줄기세포, 당뇨병, 신경과학, 암, 전염병학, 보건연구)에 대한 지원을 받아왔다. KI는 또한 스톡홀름 대학교 분자 생물과학부와 왕립 기술 연구소와 합동 연구를 위한 지원도 받고 있다. 연구소는 1810년에 스톡홀름 서쪽에 위치한 쿵스홀멘에 설립되었다가 주 캠퍼스는 10년 후 스톡홀름 주 외곽 솔나(Solna)에 이전 되었고, 두 번째 캠퍼스는 후딩에(Huddinge) 플레밍스베리에 세워졌다. 카롤린스카 대학 병원은 솔나와 후딩에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구와 교육 병원 등이 대학과 관련 있다. 이 둘은 함께 대학 건강 과학 센터를 형성하는데, 이곳은 스웨덴에서 교육과 연구로 가장 큰 센터로 30%의 의료 교육과 40%의 의학 학술 연구를 전국적으로 지휘한다.

    solna-hddinge campers 카롤린스카 솔나 캠퍼스

    임상 신경과학과, 임상의학과, 의학과, 분자 의학 및 진료, 종양병리학과, 공공보건 과학과, 여성 아동의학과 세포분자 생물학과, 학습ㆍ정보ㆍ경영 윤리학과, 생화학ㆍ생물 물리학과, 역학ㆍ생물 통계학과, 미생물학ㆍ종양ㆍ세포 생물학과, 신경과학과, 생리 약물학과, 환경 의학 연구소

    카롤린스카 후딩에 캠퍼스

    생명과학ㆍ영양학과, 임상 과학 교육학과, 치의학과, 실험의학과, 의대, 신경 생물학 보건과학과, 진단 검사 의학과, 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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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bel prizes

    무엇이 인류에게 이로운 최고의 의학적 발견을 지속시키는가?

    인류에 이로운 발견에 대한 공로는 수상 받아야 한다는 노벨의 유언을 따라 카롤린스카의 노벨 의회에서는 KI에 속해있는 50명의 교수들로 구성되어 매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임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 KI에서는 총 5명의 노벨 생리 의학 수상자를 배출 하였다. 이 밖에도 많은 연구원들이 인류를 위한 발견을 해냈고, 노벨상으로 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후의 수상자들의 연구에 기반이 되는 연구결과들을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휴고 테오렐 박사는 1955년 생명에 필요한 몇 가지 효소에 관해 명확히 밝혀냈었고 1967년 랑나르 그라니트 박사의 망막 과정과 색각 기전을 전기생리학적으로 분석을 통해 우리는 망막의 작용에 억제 반응의 중요성과 망막의 구성 요소에 의한 분광학적 구별의 원리를 밝혀냈다.

    1970년 울프 폰 오일러 박사의 노르아드레날린의 규명은 마약이나 버섯 독에 만취할 때 오는 희열과 꿈같은 경험이 약물의 독성이 뇌의 신경자극 전달과정을 혼란시켜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게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물들이 개발되어 심리적 질병과 정신적 혼란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할 있게 되었다. 1982년 수네 베리스트림 박사와 벵트 사무엘손 박사는 폰 오일러 박사가 발견한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분해하여 우리 육체가 건강하기 위한 체액인 혈액, 가래, 담즙의 불균형 형상을 억제할 수 있는 생물학적 시스템을 밝혀내었다.

    topic

    그 밖에도 카롤린스카 대학병원 방사선과 의사였던 셀징거(Sven Ivar Seldinger)가 1953년 혈관질환을 진단할 때 혈관 사진과 영상을 얻기 위해 매번 혈관을 잘라내는 수술을 대체할 방법을 발견했다. 피부 절개를 하지 않고 바늘로 혈관에 구멍을 내는 것이 특징으로 수술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안전하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어 세계 모든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다. 진단 외에도 색전술, 스텐트 삽입술, 풍선 확장술 등 인터벤션 치료를 위한 기초시술로 많이 시행되고 있다. 1951년 스웨덴 렉셀(Lars leksell)교수가 처음 개념을 정립했던 감마 나이프 방사선 수술은 오늘날 전신마취 없이 두피나 두 대골을 절개하지 않고 감마선나이프를 사용해 머릿속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만든 기반이 되었다.

    1951년 스웨덴 렉셀(Lars leksell)교수가 처음 개념을 정립했던 감마 나이프 방사선 수술은 오늘날 전신마취 없이 두피나 두 대골을 절개하지 않고 감마선나이프를 사용해 머릿속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만든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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