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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인물

존 켄드루 John Kendrew

존 켄드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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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endish Laboratory (캐번디시 연구소)
  • 작성 2015-09-16
  • 조회 3,546
  • 출생1917-03-24 영국 옥스퍼드
  • 국적 영국
  • 분야분자생물학, 물리화학
  • 소속캐번디시 연구소
  • 출신대학카롤린스카 대학
  • 주요업적X선 해석에 의학 단백질의 구조연구 및 미오글로빈 구조 해명
  • 수상노벨 화학상(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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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영국의 분자생물학자·물리화학자. 1947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M.F.퍼루츠와 함께 X선해석에 의한 단백질의 구조 등을 연구, 미오글로빈의 전체구조를 해명한 업적으로(1960), 퍼루츠와 공동으로 1962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존 켄드루는 1917년 3월 24일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옥스퍼드 대학의 기후학에 있어서 선구주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수년간 거주한 미술가였다. 그는 옥스퍼드와 킬리프톤 대학 브리스톨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36년 캐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 입학한다. 1939년 화학을 전공한 그는 전쟁이 일어난 후 몇 달 동안은 모엘인 휴그(Moelwyn-Hughes) 지도하에 케임브리지 물리화학 부서에서 반응속도론에 관해 연구하였다. 그는 전기통신 연구 기관인 항공연구 기관 회원이 되었고 전파 탐지기에 관해 연구했다.

1940년 그는 로버트 왓슨 와트(Robert Watson-Watt)의 직원이 되어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영국 공군 본부에서 오퍼레이션 리서치에 합류하게 되었다. 성공적으로 연방위대,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동맹국 최고사령관에 과학적 조언을 담당하였고 영국 공군 최고사령관 자리에 올랐다.

전쟁 동안 그는 생물학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J.D 버널(J.D Bernal)과 폴링(L. Pauling)의 영향으로 단백질 구조 연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1946년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로 돌아가 막스 퍼루츠(Max Perutz)와 함께 협동연구를 시작한다. 퍼루츠가 그에게 근육조직에 산소를 저장하고 붉은 색을 띠는 미오 글로빈과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내는 연구를 맡김과 동시에 켄드루는 승진하게 되었다. 이것이 단백질인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고 그의 연구는 미오글로빈 분자에 있는 각각의 원자의 위치를 밝혀내는 것과 분자의 모양을 그려내는 것 이였다. 첫 단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켄드루는 퍼루츠가 헤모글로빈을 연구하기 전에 미오글로빈의 삼차원 구조모형을 만들어 냈다. 켄드루는 1961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단백질해 관해 이런 말을 썼다. “실제 단백질은 살아있는 세포의 작용이다. 대부분 세포에서 발생하는 화학 작용은 효소에 의해 촉진되며 모두가 알다시피 효소는 단백질이다.” 켄드루는 노벨상 수상 후에도 계속해서 미오글로빈의 구조에 관해 연구해나갔다. 켄드루와 퍼루츠는 분자 생물학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74년까지 켄드루가 연구소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 다음해에 켄드루는 유럽 분자 생물학 연구소를 하이델베르크에 설립하여 1982년까지 관리 감독하였다.

1947년 피터하우스의 선임 연구원이 되었고, 1954년 데이비 패러데이(Davy-Faraday) 왕립 연구소 리더, 1960 왕립협회 연구원 그리고 1962년 미국 생화학 협회 명예 회원이 되었다. 그는 주로 단백질 구조 분야를 연구했고 미오글로핀 X-ray 분석에 주로 중점을 두었다. 이 프로젝트는 미오글로핀의 입체 모형을 만들어 냈고 1960년대 구조를 완성했다.

켄드루는 독신이였으며 음악, 역사 미술 그리고 그의 모친의 발자취를 따라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여가를 즐겼다.

<공동수상>

막스 퍼루츠(Max Ferdinand Perutz)
오스트리아 빈 출생. 빈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케임브리지대학교 캐번디시연구소의 분자생물학 연구반에 들어가 W.브랙의 조수로 일하였다(1947).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62년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되었으며 1963~1969년 유럽분자생물학기구의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결정(結晶)헤모글로빈의 X선회절에 의한 분자구조 결정(1958) 연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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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연설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1869년에 스웨덴 화학자인 크리스티안 빌헬름 블롬스트란드는 『오늘날의 화학』이라는 유명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원자들을 벽돌로 사용하는 건축에서 우리가 화합물이라고 부르는 정교한 구조물을 그 방식 대로 성실하게 재현하는 것과 한 원자가 또 다른 원자에 연결되는 결합의 상대적 위치와 수를 결정하는 것, 간단히 말해 공간에 원자들의 분포를 결정하는 것이 화학자들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블롬스트란드는 이 책에서 원자로부터 어떻게 화합물이 형성되는지에 대한 지식, 즉 오늘날 흔히 '구조'라고 부르는 것에 관한 지식을 제공합니다. 더욱이 구조 결정은 화학의 가장 큰 임무였으며 다른 많은 기술들을 사용하여 접근해 왔습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탄소화합물, 이른바 유기화합물의 구조 결정은 초기에 빠르게 발달하였습니다. 이 단계에서의 기술들은 일반적으로 순수화학에 속합니다. 사람들은 화합물의 반응으로부터 결론을 내리고, 그것의 분해 생성물을 연구하고, 그리고 더 단순한 화합물을 조합하여 원하는 물질을 합성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도달한 구조는 개략적인 그림에 불과하였습니다. 즉 어떤 원자들이 주어진 원자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지만 원자 간의 거리나 결합 각도에 대한 정확한 값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화학결합의 최신 처리방법과 구조 및 특성 간의 상호관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위의 값들이 필요하고 그것은 오직 물리학의 기술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원자들의 상대적인 배치에 관한 현재의 지식에 공헌한 물리학은 엑스선 빔이 결정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에 근거합니다. 회절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결정이 일정한 방향으로 엑스선 빔을 내보냅니다. 이렇게 나온 빔을 반사라고 표현합니다. 이 같은 반사의 방향과 세기는 결정 내 원자들의 종류와 분포에 따르기 때문에 구조 결정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막스 폰 라우에가 결정에 의한 엑스선 회절을 발견하였고 이것으로 19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것이 50년 전입니다. 이 업적은 엑스선 특성과 고체상태의 화합물 구조를 연구하는 데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구조결정의 초기 응용은 두 영국 과학자인 브래그 부자 의해 맨 처음 개발되었고 그들은 191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기술은 그 후에 상당히 개량되었고 더욱 복잡한 구조들을 밝히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단순한 구조 외의 물질은 구조를 밝히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실험 자료로부터 그 화합물의 구조를 찾아내는 일반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수학적 계산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였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중반쯤 너무 복잡해서 고전적인 화학 방법을 사용하는 모든 시도들로 해결하지 못했던 유기화합물의 엑스선 구조 결정이 가능한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1937년 다른 어떤 방법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맥스 퍼루츠 교수는 엑스선 회절로 헤모글로빈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케임브리지에서 실험을 하였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로렌스 브래그 경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여, 1938년 케임브리지 내에 있는 캐번디시 실험실의 실장이 되었는데, 그는 퍼루츠 교수가 얻은 결과를 보고 진행에 대한 격려와 매우 효율적인 지원을 하였습니다. 헤모글로빈은 생명 과정에 중대한 역할을 하며 살아 있는 유기체에 기본적인 물질인 단백질에 속합니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의 구성 요소여서 폐에서 산소를 흡수하고 난 후에 몸의 다른 조직에 산소를 전달하는 철을 포함합니다. 헤모글로빈의 분자는 거의 구모양이어서 구형단백질에 속합니다. 초기에 처음 시도하려는 물질로 선택된 이유는 좋은 결정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과 헤모글로빈 분자가 단백질치고는 아주 작기 때문입니다. 약 10년 전에 존 켄드루 교수가 퍼루츠 교수 연구팀에 합류하였고 그에게 할당된 일은 미오글로빈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오글로빈은 또 다른 구형단백질이며 헤모글로빈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4분의 1 정도의 크기를 가진 분자입니다. 이것은 근육에서 발견되며 그곳에 산소를 저장합니다. 특히 많은 양의 미오글로빈이 고래와 물개의 근육조직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잠수할 때 많은 양의 산소를 저장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퍼루츠와 켄드루 교수는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쳤습니다. 아주 포괄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1953년이 되어서야 퍼루츠 교수가 무거운 원자, 즉 수은 같은 원자를 헤모글로빈 분자 내의 일정한 위치에 결합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것으로 회절무늬가 어느 정도 바뀌었고, 그 변화는 직접적인 구조 결정에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방법은 원리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퍼루츠 교수는 새로운 방식과 훌륭한 기술로 그것을 적용하였습니다. 켄드루 교수 또한 미오글로빈 분자 내에 수은이나 금 등의 무거운 원자를 집어 넣는 대체방법으로 성공했으며 유사한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의 필수조건은 무거운 원자를 첨가했을 때 결정분자 내에 있는 다른 원자들의 위치를 바꾸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자가 실제로 바뀌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은 단순히 분자의 거대한 크기 때문입니다. 브래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했습니다. "인도 대왕의 코끼리가 그 이마에 칠해진 금성을 하찮게 여기는 것처럼 분자는 대수롭지 않은 부착물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의 직접적인 구조 결정에 대한 경로가 열렸다 할지라도 여전히 처리해야 할 방대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두 분자 중 더 작은 미오글로빈은 약 2,600개의 원자들을 포함하고 대부분 이것의 위치는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를 얻기 위해 켄드루 교수는 110개의 결정을 조사하고 약 25만 개의 엑스선 반사 세기를 측정하였습니다. 만약 그가 고성능 컴퓨터에 접근할 수 없었다면 계산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헤모글로빈 분자는 4배나 크고 구조는 아직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켄드루와 퍼루츠 교수는 좀 더 자세한 그림을 얻기 위해 훨씬 많은 수의 엑스선 반사 세기를 모았습니다.

켄드루와 퍼루츠 교수의 공헌으로 구형단백질들의 구조 뒤에 숨어 있는 원리들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25년의 오랜 노고 끝에 신중한 실험 결과를 가지고 구조 결정의 목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연구를 이끌어 왔던 독창력과 기술뿐만 아니라 이겨 내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인내와 끈기 때문에 두 과학자를 칭찬합니다. 이제 단백질 구조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수많은 새로운 구조 결정이 퍼루츠와 켄드루 교수가 가르쳐 준 경로를 따라 수행될 것을 확신합니다. 살아 있는 유기체에 필수적인 물질들에 관하여 얻은 지식은 생명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표명했던 조건, 즉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혜택을 제공한 자에게 상을 수여하라는 유지를 충족시킨 것이 분명합니다.

켄드루 박사님, 퍼루츠 박사님.
최근에 "오늘날 살아 있는 유기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말로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 서 있다"라고 박사님 중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은 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데 매우 효율적으로 공헌했고, 그 세계를 처음으로 살짝 들여다본 사람들이었습니다. 박사님들은 체계적인 공동 연구를 통하여 구조의 엄청난 복잡성과 생물의 발생, 그리고 건강하거나 질병에 걸린 살아 있는 유기체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확고한 기초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대단히 만족하며 두 분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과학원을 대신하여 뜨거운 축하를 드리며 이제 전하로부터 1962년 노벨 화학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스웨덴 왕립과학원 G. 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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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www.phy.cam.ac.uk/cavendish, wikipedia, naver, Nobe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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